교포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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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일반2026. 8. 9. 오후 9:03:33조회 0

[특별기획 ①-상] AI 시대, 4050은 어디로 가야 하나 — 고래기름을 한 방울 더 짜내려던 사람들

〈교포유니온 특별기획 · 전 7편〉 ①누가 먼저 밀려나는가 ②전환에 실패하는 세 가지 방식 ③우리 일은 어디까지 대체되나 ④자영업의 무기 ⑤무엇을 어떻게 배울까 ⑥60세 이후를 설계한다 ⑦자녀 세대에게 시작은 신문 사설 한 줄이었습니다 이 기획을 시작하게 만든 글이 있습니다. 고래기름 이야기였습니다. 읽고 나서 며칠 동안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찾아봤습니다. 1. 736척의 배 1846년, 미국 국적 포경선은 736척이었습니다. 작은 산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는 산업이었습니다. 고래기름은 등불을 밝혔습니다. 해가 진 뒤에도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 것이 고래기름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의 뉴베드퍼드가 그 산업의 수도였습니다. 배 주인, 선원, 통 만드는 사람, 기름 정제하는 사람, 밧줄 짜는 사람. 도시 하나가 그걸로 먹고살았습니다. 1852년에는 220척이 고래 2,682마리를 잡았습니다. 역대 최대 어획이었습니다. 1858년, 포경 선단의 총 톤수가 역사상 최고인 19만 9천 톤에 이릅니다. 그게 정점이었습니다. 2. 그 무렵 그들이 하던 고민 산업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포경업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더 잘하려고 했습니다. 고래 한 마리에서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더 짜내는 방법. 더 빠른 배. 더 좋은 작살. 더 효율적인 정제. 그리고 고래가 남아 있는 곳까지 더 멀리 가는 것. 그래서 북극으로 갔습니다. 1871년, 북극 선단 40척 중 33척이 얼음에 갇혀 사라졌습니다. 한 시즌에 선단의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더 멀리 가서 더 많이 잡으려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사진: 북극의 포경선 (제임스 웰던, 19세기) — 고래를 찾아 여기까지 갔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3. 그런데 답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1859년,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한 사람이 땅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석유가 나왔습니다. 그걸 정제한 등유(kerosene)가 등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배를 띄우고, 몇 년씩 항해하고, 목숨을 걸고 작살을 던져서 얻던 것을 — 땅에 구멍을 뚫어서 얻게 된 겁니다. 1858년 19만 9천 톤이던 선단이 1860년에 16만 7천 톤으로 줄었습니다. 2년입니다. 1876년, 포경에 나선 미국 배는 39척이었습니다. 736척에서 39척입니다. 뉴베드퍼드에서 마지막 포경선이 떠난 건 1927년이었습니다. 사진: 펜실베이니아의 초기 유정 — 바다에서 목숨 걸고 얻던 것을 땅에서 얻게 됐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4. 이 이야기의 정말 무서운 부분 포경업자들이 게을렀던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기술을 개선했고, 더 멀리 갔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문제는 그 노력이 향한 방향이었습니다. "어떻게 고래에서 기름을 더 짜낼까." 이건 1840년에는 훌륭한 질문이었습니다. 1865년에는 무의미한 질문이었습니다. 답을 아무리 잘 찾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질문 자체가 틀렸으니까요. 큰 변화가 올 때 제일 위험한 건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틀린 질문에 열심히 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깊이 빠집니다.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5. 말똥 이야기 — 그런데 이건 절반이 지어낸 얘기입니다 이 얘기와 늘 같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차 시대에 도시가 말똥으로 뒤덮이는 게 큰 걱정이었다는 얘기입니다. 1894년 런던 타임스가 "50년 뒤 런던의 모든 거리가 9피트 말똥에 묻힐 것"이라고 썼다는 인용이 유명합니다. 1898년 도시계획 회의가 이 문제를 못 풀고 해산했다는 얘기도 따라옵니다. 저도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확인해 봤습니다. 이 인용문은 출처가 없습니다. 타임스가 2018년에 직접 부인했습니다. 자기 신문에 그런 문장이 없다고요. 1894년 6월 8일자에 "먼지와 진흙"에 대한 불만 기사는 있지만, 그런 예측은 없습니다. 1898년 회의가 해산했다는 기록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워낙 많이 돌아서 사실처럼 굳어진 얘기입니다. 그런데 실제 기록을 찾아보니, 지어낸 인용문보다 훨씬 심각했습니다. 뉴욕에 남아 있는 숫자들 말이 도시를 달리면서 배설을 하니 당연히 문제가 됐습니다. 그 규모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말의 수 (1880년, 뉴욕과 브루클린)  · 15만 ~ 17만 5천 마리 말 한 마리가 하루에 내놓는 배설물  · 15 ~ 30파운드 두 도시 합쳐 하루  · 300만 ~ 400만 파운드 소변  · 한 마리가 하루 약 1쿼트, 도시 전체 하루 약 4만 갤런 하루에 400만 파운드입니다. 매일요. 그리고 죽은 말 말은 길에서 죽었습니다. 쓰러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1880년, 뉴욕이 길에서 치운 죽은 말  · 약 1만 5천 마리  · 하루 41마리 공중보건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말똥은 집파리가 가장 좋아하는 번식처였습니다. 1900년 미국 도시에서 하루 30억 마리의 파리가 말똥에서 부화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장티푸스와 유아 설사병 유행이 파리 급증과 연결됩니다. 사고도 많았습니다. 1900년 뉴욕에서 말과 마차에 치여 사망한 사람  · 200명  · 인구당 사망률이 2003년보다 약 75% 높았습니다 사진: 1900년 뉴욕 멀버리 스트리트 — 이런 말이 도시에 15만 마리 넘게 있었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그러니까 이건 냄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생존 문제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고민은 당연히 이것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더 빨리, 더 싸게 치울까." 더 좋은 삽. 더 나은 청소 방식. 더 효율적인 수거 체계. 그 문제를 푸는 데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풀린 게 아니라 사라졌습니다.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20년 만에 이 위기가 없어졌습니다. 당시 자동차는 '환경 구세주'로 환영받았습니다. 매연을 뿜는 기계가 환경 구세주로 불렸다는 게 지금은 이상하게 들리지만, 하루 400만 파운드와 파리 30억 마리를 없앴으니 그때는 그랬습니다. 치우는 방법을 개선하던 사람들의 시장은, 치울 것이 없어지면서 함께 없어졌습니다. 고래기름과 똑같은 구조입니다. 열심히 하던 일이 틀린 게 아니라, 그 일이 필요한 세상이 끝난 겁니다. 그리고 1893년, 런던에서 더 조용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말똥의 성격이 바뀝니다. 그때까지 말똥은 팔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거름으로 농가에 넘겼습니다. 수입이었습니다. 1893년부터는 돈을 내고 치워야 하는 것이 됐습니다. 같은 물건이 자산에서 비용으로 바뀐 겁니다. 장사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아실 겁니다. 창고에 쌓아둔 재고가 어느 날 갑자기 처리비용이 되는 순간입니다. 내 손에 있는 것은 그대로인데, 세상이 바뀌면서 가치가 뒤집힙니다.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마이너스가 됩니다. 그리고 1896년,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이렇게 썼습니다. "자동차가 거리의 말똥을 없앨 것이다." 당시에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사진: 뉴욕 8번가 — 마차와 자동차가 같은 길을 쓰던 짧은 시기입니다. 이 장면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6. 그런데 살아남은 회사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절망만 남는 글이 됩니다. 그래서 반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852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서 형제 둘이 대장간 겸 마차 공장을 열었습니다. 이름이 스투드베이커(Studebaker)입니다. 1900년대 초,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마차 제조업체가 됐습니다. 그리고 1902년에 전기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1904년에는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세계에서 마차를 가장 많이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회사로 넘어간 겁니다. 같은 산업, 같은 시기,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마차 회사는 사라지고, 이 회사는 넘어갔습니다. 차이는 자기 사업을 무엇이라고 정의했는지였습니다. "우리는 마차를 만든다"고 정의한 회사는 마차와 함께 끝났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동시킨다"고 정의한 회사는 다음 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스투드베이커도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1966년입니다. 전환은 해냈는데 왜 죽었을까요. 그리고 마차에서 자동차로 넘어간 회사들 중에 진짜로 살아남은 쪽은 어디였을까요. 이 글을 쓴 뒤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게 다음 편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사진: 스투드베이커가 만든 마차 — 이 회사는 이걸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들었고, 그다음에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7. 그래서 이 기획을 시작합니다 저는 22년째 간판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저에게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겁니다. 나는 지금 고래에서 기름을 한 방울 더 짜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오고 있는 것이 정말 석유인가, 아니면 과장된 소문인가. 이걸 모르면 두 가지 실수 중 하나를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하다가 침몰하거나, 겁먹고 멀쩡한 것을 버리거나. 그래서 감이 아니라 숫자를 찾아봤습니다. 스탠퍼드 연구, 미국 급여 데이터, AARP 조사,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숫자에서 놀랐습니다. 상편을 여기서 마칩니다 여기까지는 100년 전 이야기였습니다. 고래기름, 말똥, 그리고 마차. 세 이야기가 같은 말을 합니다. 큰 변화가 올 때 제일 위험한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게 아니라 틀린 질문에 열심히 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질문은 맞는 질문일까요. 그걸 알려면 감이 아니라 숫자가 필요했습니다. 하편에서는 스탠퍼드 대학이 미국 급여 데이터 350만 명을 분석한 결과를 봅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우리가 모임에서 하는 얘기와 정반대였습니다. 하편 — 먼저 밀려난 건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출처: 미국 포경업 통계, 1859년 펜실베이니아 타이터스빌 유정, 1894년 런던 말똥 위기 인용에 대한 타임스의 2018년 부인 및 1893년 런던 말똥 처리 기록, 19세기 말 뉴욕·브루클린 도시 말 통계(UCLA 교통연구소 ACCESS 매거진), 1896년 코리에레 델라 세라 보도, 스투드베이커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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