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일반2026. 8. 9. 오후 8:04:56조회 0
[여행] 등산 대신 스케이트 — LA 한복판의 3.5마일, 레이크 할리우드
101번 프리웨이에서 10분. 할리우드 사인 바로 아래. LA 갈 때마다 멀리서만 보던 그 간판을, 이번엔 바로 밑까지 걸어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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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일을 오래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습니다. 좋은 사인은 억지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삽니다. LA는 제 동네가 아닙니다. 일 때문에, 가족 만나러, 1년에 몇 번 내려갑니다. 그리고 내려갈 때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그 흰 글자가 보입니다.
22년째 간판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그런데 늘 차 안에서, 멀리서였습니다. 프리웨이에서 흘깃 보고 "저거 참 크다" 하고 지나가는 거죠.
▶ 이번엔 밑까지 가봤습니다. 그리고 거기 이런 길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사진: 레이크 할리우드 레저버를 감싸고 있는 할리우드 힐스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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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발단은 무릎이었습니다
LA에 내려갈 일이 생겼습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가는 김에 등산 좀 하자."
50대 중반 남자에게 '등산'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하나는 정상에서 보는 풍경, 다른 하나는 그날 밤 무릎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저는 후자가 무서웠습니다.
그러다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등산보다 나은 트레일 — 여기선 롤러스케이트를 타도 된다."
레이크 할리우드 레저버(Lake Hollywood Reservoir). 내용을 보니 이렇습니다.
거리
· 3.5마일 루프 (약 5.6km)
고도 상승
· 50~150피트 — 사실상 평지
노면
· 약 75%가 포장도로
소요 시간
· 1시간 30분 (천천히 걸어서)
난이도
· 낮음 — 유모차·초보 자전거 가능
▶ 💡 핵심은 "포장된 평지"입니다. 그래서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 그리고 정말로 롤러블레이드 타는 사람까지 같은 길을 씁니다. 스크램블링도, 급경사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길에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등산이 제일 쉬운 곳." 등산화도 필요 없고, 스틱도 필요 없고, 그냥 운동화 신고 걸으면 되는데 풍경은 등산 코스급이라는 뜻입니다.
아내에게 기사를 보여줬습니다. "등산 대신 이거 어때." 딸이 옆에서 한마디 하더군요. "아빠 무릎 살리기 프로젝트?"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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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간판집 사장이 할리우드 사인을 보는 방법
길을 반쯤 돌면 멀홀랜드 댐(Mulholland Dam) 이 나옵니다. 여기가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철망이 없어지고 물 위로 시야가 확 열리면서, 언덕 위에 그 흰 글자들이 딱 걸립니다.
HOLLYWOOD.
20년 넘게 프리웨이에서 흘깃 보던 걸, 처음으로 가만히 서서 봤습니다. 다들 사진 찍느라 바쁜데, 저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 글자 하나 높이가 45피트입니다. 4층 건물이에요. 아홉 글자. 그리고 1923년에 저걸 산 위에 세웠습니다.
크레인이 없고, 트럭 접근로가 없고, 전기도 없던 시절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무와 금속판을 지고 산을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 💬 22년 동안 간판 달면서 제일 힘들었던 현장이 3층 벽면이었습니다. 사다리차 세울 자리가 없다고 하루를 통째로 날린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건 산입니다. 100년 전에요.
아내가 물었습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
"견적 뽑는 중."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습니다. 이 일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글자가 다 일감으로 보입니다.
사진: 글자 하나 높이가 45피트, 4층 건물 높이입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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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댐 이야기가 은근히 무겁습니다
멀홀랜드 댐은 1924년 완공됐습니다.
길이 1,000피트
콘크리트 17만 2천 큐빅야드
설계·건설: 윌리엄 멀홀랜드(William Mulholland) — LA에 물을 끌어와 이 도시를 도시로 만든 사람
댐 벽면을 자세히 보면 캘리포니아 그리즐리 곰의 머리가 조각돼 있습니다.
요즘 댐은 이런 걸 하지 않습니다. 기능만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100년 전 사람들은 콘크리트 벽에도 장식을 새겼습니다.
▶ 💬 저는 이 대목이 좋았습니다. 제 일도 결국 그겁니다. 기능만 하는 사인과, 보고 싶어지는 사인은 다릅니다. 둘 다 글자를 붙이는 일인데, 사람이 기억하는 건 후자입니다.
그리고 조금 무거운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만든 세인트프랜시스 댐이 1928년에 붕괴해 수백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 사고 이후 멀홀랜드 댐 앞쪽에 흙을 대량으로 쌓아 보강했습니다. 지금 댐 아래쪽이 언덕처럼 덮여 있는 게 그 흔적입니다.
한 사람의 커리어에서 최고점과 최악의 실패가 같은 자리에 남아 있는 셈입니다.
자기 사업 20년 넘게 해본 분이라면 이 대목에서 잠깐 조용해지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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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길 자체는 그냥 편안합니다
물은 계속 왼쪽에 있습니다. 대부분 구간이 철망으로 막혀 있어서 물가로 내려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는 LA 상수원이니까 당연합니다.
대신 반대편은 언덕이고, 나무 그늘이 꽤 길게 이어집니다.
새가 많습니다. 오리, 왜가리, 매. 운이 좋으면 사슴도 봅니다. 프리웨이에서 10분 거리에서 매가 도는 걸 올려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도시가 갑자기 음소거된 느낌입니다.
저희는 한 바퀴에 한 시간 반 걸렸습니다. 급할 게 없어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물 마시고, 사진 찍고, 딸 대학 얘기 하고, 다음 여행지 얘기 하고.
▶ 등산이 아니라 산책이었습니다. 그런데 풍경은 등산급이었습니다. 별명이 왜 "등산이 제일 쉬운 곳"인지 알겠더군요.
사진: 멀홀랜드 댐 — 1924년 완공, 콘크리트 벽면에 그리즐리 곰 머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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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가시기 전에 알아두실 것들
저처럼 타지에서 내려가시는 분들은 특히 이 부분을 보세요. 모르고 가면 헛걸음합니다.
🕕 게이트 시간
· 아침 6시 30분 개방, 해질 때쯤 잠김. 계절마다 다릅니다. 문 잠기기 전에 나오셔야 합니다. 한 바퀴 1시간 반으로 계산하세요.
🚗 주차
· Lake Hollywood Drive 북쪽 게이트 근처 길가 무료. 주말엔 금방 찹니다. 평일 아침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 ⚠️ 차량털이 신고가 있는 구역입니다. 차 안에 물건을 보이게 두지 마세요. 렌터카에 짐 두고 가시면 안 됩니다.
🐕 반려견
· 🚫 출입 금지입니다. 상수원이라 그렇습니다. 모르고 데려와 돌아가는 분들을 봤습니다.
🚲 자전거·스케이트
· ✅ 가능합니다. 75%가 포장이라 로드바이크나 하이브리드로 충분합니다. LA에서 자전거 대여도 됩니다.
💧 물·화장실
· 입구에 음수대만 있고 그 이후로는 없습니다. 화장실도 없습니다. 출발 전에 해결하고 물 챙기세요.
⏰ 시간대
· 이른 아침 또는 늦은 오후. LA 오후 햇볕은 그늘 없는 구간에서 사람을 지치게 만듭니다. 겨울 맑은 날이 산 뷰가 가장 선명합니다.
📷 사진
· 사인 뷰 최고 지점은 댐 위, 그리고 남서쪽 구간입니다. 남서쪽 어떤 지점에서는 철망 없이 사인이 머리 위로 잡힙니다. 걸으면서 각도를 계속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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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세의 결론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합니다. 여행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 배우는 게 있습니다.
▶ 도전이 꼭 힘들어야 도전인 건 아닙니다.
3.5마일 평지를 걷고, 100년 된 댐을 구경하고, 콘크리트에 새겨진 곰 머리를 찾아본 그 아침이 올해 나갔던 어떤 나들이보다 좋았습니다.
무릎도 멀쩡했습니다. 아내도 웃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20년 넘게 프리웨이에서 스쳐 지나가던 간판 밑에, 걸어서 서 봤다는 것. 그게 이번 LA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에 LA 내려갈 때 또 갈 겁니다. 이번엔 자전거를 빌려서요.
그리고 언젠가 저 산 위에 글자 하나 세워달라는 전화가 오면 — 저는 받습니다. 샌프란에서 트럭 몰고 내려갑니다. 견적은 이미 뽑아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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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크 할리우드 레저버 (Lake Hollywood Reservoir)
· 3.5마일 루프 · 난이도 하 · 입장 무료
· 게이트 오전 6:30 ~ 일몰
· 주차: Lake Hollywood Dr 길가 (무료)
· 반려견 불가 · 자전거 가능 · 화장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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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든 베이 지역이든, 이렇게 "힘 안 들고 풍경 좋은" 코스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무릎 걱정하는 50대들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