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다운타운에서 북쪽으로 15분만 올라가면 물이 분홍색인 곳이 있습니다. 필터를 씌운 게 아닙니다. 실제로 저 색입니다.

물이 왜 분홍색인가
소금 농도가 아주 높아지면 거기서만 사는 것들이 번식합니다. 두날리엘라 살리나(Dunaliella salina)라는 조류와 호염성 세균입니다. 이것들이 붉은 색소를 만들어 냅니다. 물이 짜질수록 색이 진해집니다.
원래도 분홍빛이 돌던 곳인데, 2021년에 남부 베이 해안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 연못에 물이 새로 들어오지 않게 됐습니다. 증발만 계속되니 소금 농도가 계속 올라갔고, 그래서 색이 더 진해졌습니다.
그래서 언제 가느냐가 전부입니다. 여름 내내 증발이 진행된 늦여름과 초가을이 가장 진합니다. 반대로 비가 온 직후에 가면 묽어져서 그냥 회색 물입니다. 비 예보를 보고 며칠 지난 뒤에 가세요.

그런데 여기, 원래 산호세의 항구였습니다
지금은 갈대밭과 소금밭뿐이지만 150년 전에는 배가 드나드는 항구였습니다. 산호세에서 난 농작물이 여기서 배에 실려 샌프란시스코로 갔습니다. 철도가 깔리면서 항구는 쓸모를 잃었고, 마을은 통조림 공장 동네로 바뀝니다.
마리나에 가 보면 배 몇 척이 마른 갯벌에 얹혀 있습니다. 치울 돈이 없어서 그냥 둔 겁니다. 항구였다는 증거가 그런 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13피트가 가라앉았습니다
20세기 내내 산호세는 지하수를 퍼 올려 썼습니다. 물을 빼낸 만큼 땅이 내려앉았고, 알비소는 약 13피트(4미터)가 주저앉았습니다. 지금 이 동네는 해수면보다 낮습니다. 제방이 무너지면 물에 잠깁니다. 실제로 여러 번 잠겼습니다.
제방 위 트레일을 걸으면 그게 눈으로 보입니다. 왼쪽은 물, 오른쪽은 마을인데 마을 지붕이 물보다 낮습니다. 처음 보면 방향 감각이 이상해집니다.
1968년, 알비소 주민들은 투표로 독립 마을이기를 그만두고 산호세에 편입되기로 합니다. 혼자서는 제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통조림 공장이 여기 있었습니다
항구가 죽은 뒤 알비소를 먹여 살린 것은 베이사이드 캐너리(Bayside Cannery)였습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뒤 한 중국인 이민자 가족이 세운 공장입니다.
아들 토마스 푼 츄(Thomas Foon Chew, 1889~1931)가 물려받아 키웠습니다. 1920년대에 이 공장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통조림 회사가 됩니다. 산호세 끝자락 갯벌 마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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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는 통조림으로 만들기가 까다로운 채소였습니다. 색이 죽고 물러져서 상품이 되지 않았습니다. 1919년 츄는 아이슬턴에 공장을 세우고 초록색을 살린 채로 통조림을 만드는 방법을 완성합니다. 그때부터 미국 전역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실어 보낼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은 그를 '아스파라거스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당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중국계 사업가가 됩니다. 중국인 배척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입니다. 중국인은 시민권도 받을 수 없고 땅도 제대로 살 수 없던 때에, 그는 백인 농장주들과 거래하며 공장을 여러 개 돌렸습니다. 임금을 제때 주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1931년, 마흔둘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장례 행렬이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그랜트 애비뉴를 지날 때 2만 5천 명이 나와 섰습니다.
공장 건물은 아직 서 있습니다. 알비소 역사지구 안에 있고, 국가 사적지로 등재돼 있습니다. 무너져 가는 벽돌 건물이라 겉에서만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 있으면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백 년 전 아시아계 이민자의 흔적을 보는 일이니까요.
재팬타운 편에서 헤인렌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밀려난 사람들이 자기 마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였죠. 알비소도 같은 계열의 이야기입니다. 실리콘밸리는 이 사람들 위에 세워졌습니다.
실전 정보
알비소 마리나 카운티 파크 · 1195 Hope Street, San Jose, CA 95002 · (408) 262-6980 입장료 없음, 예약 없음, 주차 무료. 공원은 오전 8시부터 일몰까지. 트레일은 일출부터 열립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알비소 슬라우 트레일(Alviso Slough Trail)로 들어갑니다. 제방 위 평평한 흙길이라 오르막은 없습니다. 끝까지 돌면 꽤 긴 순환로인데, 분홍 연못만 보시려면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모르고 가면 당황하는 것
개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공원 안 산책로와 피크닉장까지는 되는데, 트레일과 제방, 보드워크에는 못 들어갑니다. 여기가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라서 그렇습니다. 강아지 데리고 갔다가 주차장에서 되돌아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드론도 금지입니다. 철새와 멸종위기종인 서부흰물떼새 때문입니다. 위에서 찍은 그림을 기대하고 가시면 안 됩니다.
연못 가장자리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트레일 위에만 있어야 합니다. 사진 욕심에 내려가는 사람이 있는데, 규정 위반이고 바닥이 생각보다 무릅니다.
그늘이 한 점도 없습니다. 나무가 없는 제방길입니다. 여름 한낮에 가면 정말 고생합니다. 모자, 선크림, 물은 필수고 시간대를 잘 고르셔야 합니다.
제일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해 지기 한두 시간 전입니다. 덥지 않고, 빛이 낮게 깔려서 분홍색이 훨씬 잘 나옵니다. 낮 열두 시 정오 빛에서는 색이 씻겨 보입니다.
같이 묶으면 좋은 곳
알비소 역사지구가 걸어서 닿는 거리입니다. 백 년 넘은 건물 몇 채와 베이사이드 캐너리 터가 있습니다. 크지 않아 삼사십 분이면 한 바퀴 돕니다.
돈 에드워즈 샌프란시스코 베이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이 바로 이어집니다. 미국 최초의 도시 지역 야생동물 보호구역입니다. 새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옵니다.

기차를 좋아하신다면 이 그림을 노려볼 만합니다. 캐피톨 코리도 열차가 연못 바로 옆을 지나갑니다. 시간표를 보고 맞춰 가면 분홍 물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진은 위키미디어 커먼즈의 자유 이용 사진으로 먼저 채워 두었습니다. 직접 다녀와서 제 사진으로 바꿔 놓겠습니다. 다녀오신 분 계시면 어느 계절에 색이 제일 좋았는지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