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이 있는 이 동네에서 차로 20분만 나가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다섯 블록이 나옵니다. 산호세 재팬타운(Japantown), 일본어로는 니혼마치(日本町)입니다.
여기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미국 전체에 남은 일본인 마을이 딱 세 곳뿐인데, 그중 하나가 여기입니다. 나머지는 샌프란시스코와 LA 리틀도쿄. 그런데 그 두 곳은 재개발로 대형 쇼핑몰과 호텔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이 많이 지워졌습니다. 산호세만 아직도 가족이 대를 이어 지키는 작은 가게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소유한 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지킨 거리라는 뜻입니다.
그냥 걸으면 조용한 동네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블록에 100년치 이야기가 깔려 있습니다. 궁금한 것만 눌러서 보십시오.
📖저팬타운 이야기가 있어요, 여기에 — 이 마을 이름은 원래 욕이었습니다눌러서 펼쳐보기▾
1890년대, 농장 일을 찾아 건너온 일본인들이 처음 짐을 푼 곳은 재팬타운이 아니라 바로 옆 차이나타운이었습니다. 당시 아시아인에게 방을 내주고 밥을 파는 곳이 거기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차이나타운이 생긴 사연이 더 놀랍습니다. 1887년 6월 10일, 산호세 마켓 스트리트의 차이나타운이 방화로 전소됩니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 앞에 나선 사람이 독일 출신 백인 농장주 존 하인렌(John Heinlen)이었습니다. 불이 난 지 열흘 만에 그는 자기 목장 5에이커를 중국인들에게 임대하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합니다. 왜 팔지 않고 빌려줬냐고요? 당시 법으로 중국인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인 이웃들은 뒤집어졌습니다. 집값 떨어진다며 하인렌을 동네에서 따돌렸고, 살해 위협까지 했습니다. 그를 "아 하인렌(Ah Heinlen)"이라 부르며 중국인 취급으로 조롱했고, 새로 생긴 마을을 비웃는 뜻으로 "하인렌빌(Heinlenville)"이라 불렀습니다. 시청은 건축 허가에 제동을 걸었고,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법정에 섰습니다. 하인렌은 그 마을 둘레에 8피트짜리 담장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조롱으로 붙은 이름 하인렌빌은 그렇게 44년을 살아남았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하인렌빌에 얹혀 살다가, 1907년 신사협정 이후 여성들이 사진신부로 건너오면서 비로소 가정을 이룹니다. 하숙집 마을이 진짜 동네로 바뀐 겁니다. 쿠와바라 병원이 서고, 불교 사원이 세워지고, 교회가 생겼습니다. 정작 옆의 하인렌빌은 대공황과 이민 제한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하인렌 회사가 파산하면서 1931년 철거되고, 그 자리는 시(市)의 창고 부지가 됩니다. 재팬타운만 남았습니다.
📖1935년, 이 동네 아마추어 팀이 도쿄 프로팀을 이겼습니다눌러서 펼쳐보기▾
이 동네에는 아사히(Asahi)라는 야구팀이 있었습니다. 농장 일 마치고 모여서 공 던지던 동네 팀입니다. 그런데 1935년, 미국 순회 경기를 돌던 도쿄 자이언츠 — 지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신인 프로팀을 이겨버립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차별받고 살던 이민자 동네의 아마추어 팀이 본토에서 온 프로를 꺾은 겁니다. 그날 재팬타운이 어땠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1942년, 이 마을은 하루아침에 통째로 비었습니다 — 그리고 돌아왔습니다눌러서 펼쳐보기▾
1941년 재팬타운에는 가게가 53개 있었습니다. 식당, 두부집, 이발소, 여관, 사진관 — 없는 게 없는 번듯한 상권이었습니다. 이듬해, 전쟁이 터지면서 밸리에 살던 일본계는 미국 시민권자까지 전원 강제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가게 문을 잠그고, 가져갈 수 있는 만큼만 들고 떠났습니다. 마을은 텅 비었습니다. 진짜 놀라운 건 그 다음입니다. 1945년,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일본인 마을은 이때 사라졌습니다. 돌아갈 집도, 반겨줄 동네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산타클라라 밸리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덜 험했고, 사람들은 돌아와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10년 만에 인구가 거의 두 배가 됐고, 1950~60년대가 재팬타운의 전성기였습니다. 1세, 2세, 3세가 한 거리에 살던 시절입니다. 이후 젊은 세대가 교외로 빠지고 실리콘밸리가 밀고 들어오면서 동네는 다시 작아졌습니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버텼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다섯 블록이 그 결과입니다. 그리고 2021년, 산호세 시는 130여 년 전의 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2023년 10월에는 노스 6번가에 하인렌빌 공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조롱으로 붙었던 그 이름이, 136년 만에 공원 간판이 되어 돌아온 셈입니다.




가면 이렇게 걸으세요
전부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5번가·6번가와 잭슨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이 중심입니다. 일본계 미국인 박물관 (JAMsj) — 강제수용 시절의 실물 자료와 이 동네 사람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여기부터 보고 거리로 나가면 풍경이 달라 보입니다. 슈에이도 만주 (Shuei-Do Manju Shop, 217 Jackson St) — 1951년부터 같은 자리에서 화과자를 만듭니다. 1994년 일본 천황이 방문했을 때 이 집 만주를 따로 주문해 갔습니다. 오후 늦게 가면 인기 품목은 이미 없습니다. 니치베이 붓산 (Nichi Bei Bussan) — 강제수용에서 돌아온 가족이 다시 연 가게입니다. 지금은 그릇과 기모노, 생활 잡화를 팝니다. 산호세 불교회관 별원 / 웨슬리 연합감리교회 — 둘 다 100년이 넘었습니다. 이 동네가 살아남은 진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종교 시설이었습니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갈 곳 없을 때 여기서 잤습니다. 하인렌빌 공원 (노스 6번가) — 안내판을 꼭 읽어보십시오. 위에 접어둔 이야기가 거기 다 적혀 있습니다.
축제 때 맞춰 가면 제일 좋습니다. 7월의 오본 마츠리(Obon)가 가장 큽니다. 거리에서 다 같이 춤을 춥니다. 봄에는 니케이 마츠리, 가을에는 아키 마츠리가 열립니다. 이때 가면 평소엔 조용한 거리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이 거리에서 사라진 것 하나 — 71년 두부집 이야기눌러서 펼쳐보기▾
71년간 손으로 두부를 만들던 산호세 두부 회사(San Jose Tofu)는 2017년 문을 닫았습니다. 장사가 안 돼서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줄을 섰습니다. 그냥, 대를 이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사라진 것들 이야기도, 남은 것만큼이나 이 거리의 일부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가게들에 한 번 더 들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여기는 한 민족의 마을이 아니라, 밀려난 사람들이 서로 자리를 내주며 만든 동네입니다.
불타버린 차이나타운, 그 자리를 내준 독일 이민자, 그 곁에 얹혀 살다 마을을 이룬 일본인들, 그리고 전부 빼앗기고도 다시 돌아온 사람들. 우리보다 100년 먼저 이 땅에 온 사람들이 어떻게 버텼는지 궁금하다면, 차 세우고 한 시간만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재팬타운에서 차로 5분 — 센터 로드의 켈리 공원
재팬타운을 다 걸었는데 반나절이 남았다면, 차로 5분만 내려가십시오. 센터 로드(Senter Rd)의 켈리 공원(Kelley Park) 안에 세 곳이 붙어 있습니다. 일본 우정 정원 (Japanese Friendship Garden) — 1965년, 산호세와 일본 오카야마(岡山)가 자매도시를 맺은 기념으로 만든 6에이커 정원입니다. 오카야마의 명원 고라쿠엔(後楽園)을 본떠 만들었고, 연못의 잉어들도 1966년 오카야마에서 보내온 것들의 후손입니다. 높이가 다른 연못 세 개가 개울로 이어지고, 입장은 무료입니다(주차비만 있습니다). 재팬타운이 사람의 역사라면, 여기는 그 우정이 정원이 된 곳입니다. 해피 할로우 (Happy Hollow Park & Zoo) — 1961년부터 산호세 아이들이 자란 곳입니다. 작은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있어서, 아이 동반이면 여기가 하이라이트가 됩니다. 입장료가 있습니다. 히스토리 파크 (History Park) — 옛 산호세의 건물들을 옮겨다 모아 놓은 야외 박물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위에서 읽으신 하인렌빌 이야기의 진짜 결말이 있습니다.
📖하인렌빌의 사원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 응싱궁 이야기눌러서 펼쳐보기▾
위에서 하인렌빌이 1931년 철거됐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끝까지 버틴 건물이 있었습니다. 1888년 하인렌빌 한복판에 세워진 응싱궁(五聖宮, Ng Shing Gung) — 다섯 신을 모신 사원이자, 1층은 교실과 마을회관으로 쓰인 커뮤니티의 심장이었습니다. 마을이 사라진 뒤에도 이 벽돌 건물만은 남아 있다가, 1949년 결국 철거됩니다. 주민들이 지키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한 가지를 해냈습니다. 손으로 조각한 제단과 집기들을 철거 전에 빼내서 보관한 겁니다. 그리고 42년 뒤인 1991년, 중국계 커뮤니티가 50만 달러를 모금해 히스토리 파크 안에 응싱궁을 원형대로 복원했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1888년의 그 제단이 실제로 그대로 모셔져 있습니다. 하인렌빌이라는 마을은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그 마을의 심장은 공원 안에서 아직 뛰고 있는 셈입니다. 안에는 산타클라라 밸리 중국계 이민사 전시와 '하인렌빌'을 다룬 영상도 있습니다. 개방 시간이 짧으니(보통 토요일 낮) 가시기 전에 확인하십시오.
묶어 가는 코스 제안 — 오전에 재팬타운을 걷고 슈에이도에서 만주를 사서, 차로 5분 옮겨 켈리 공원에서 오후를 보내면 하루가 딱 맞습니다. 아이가 있으면 해피 할로우, 어른들끼리면 우정 정원에서 만주를 먹고 히스토리 파크의 응싱궁까지. 아침에 접어둔 하인렌빌 이야기를 오후에 눈으로 확인하는 코스입니다.
참고: Japantown San Jose 공식 사이트(jtown.org/history), 일본계 미국인 박물관(jamsj.org), Heinlenville 자료, Nichi Bei News. 사진: Dorothea Lange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 퍼블릭 도메인 (Densho Digital Repository 제공).
